4년도 더 된 일 이미 백 번도 넘게 말해서 주위 사람들이라면 아, 그때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일

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의지할 곳 없다 느껴졌을 때

아니 애초에 사람들이 나에게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발생한 스트레스이니 내가 타인에게 기댈 생각이 들 리가 없었다. 부정적인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이 너무 너무 무서웠던 날들


힘들어서 밥 먹으란 소리에도 힘없이 누워있고 일주일을 사람과 말 섞지 못했던 시기

그때 누적된 감정만 생각해도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몇 년이나 했고 그 괴로웠던 기억에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를 두려워했었다

날이 추워지면 혼자 알 수 없는 우울에 빠져들어 깊이 잠식되곤 했었지


아주 큰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부담감이 쌓이고 쌓여 나를 짓눌렀었다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게 사람들이 나를 너무 신뢰해서 벌어진 일

난 사람들에게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었고 정신적 지지를 보내고 싶어했으니까 그게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려서... 

남들이 들으면 애걔 겨우 그거냐고 하고 말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내 성격과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려 아주 오랜 시간 영향 줄 정도의 경험이었으니

그 시절의 기억들은 전부 내게 악몽 그 자체였다



비교적 최근의 일을 말하자면

자기 전 너무 지친다고 느끼던 밤이 있었다 그 며칠은 내내 심적으로 불안했고... 아무 일도 없는데 나 혼자 이상해진 것 같아서 그냥 오래도록 잠들었으면 좋겠다든지 정신과를 가고 싶다든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던 밤

부정적인 이야기 남이랑 나누는 것도 싫어하고 내 일은 내가 처리하자는 주의인데 그 날은 누구라도 붙잡고 엉엉 울고 싶더라 메신저를 보낼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안 보내긴 했지만

결국 호흡 못 가누고 정말 크게 울었는데 그러면서 든 생각은 놀랍게도

'몇 년 전에 그런 일을 겪어봐서 다행이다'라는 것


굳이 논하자면야 처음부터 겪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,

그래도 그때 깊은 감정의 골을 한 번 맛봤으니 지금 힘들어도 현명하게 헤쳐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는 거

아주 올바른 대처법은 실천할 수 없어도(알지도 못하고) 이런 감정을 느낄 때의 내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고 있으니까

적어도 나를 이 상태로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 

아주 최악까지 내려가기 전에 정신 차릴 수 있게


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생각이 조금씩 정말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

경험의 가치를 믿는 나는 이런 괴로운 기억도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거라고 

그러니 몇 년 후의 나는 이 일을 조금 더 성숙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

그래서 나는 미래의 나를 기대해



마지막으로 

당시 내가 크게 믿고 의지하고 존경했던 학원 선생님에게 겨우 털어놓아 들었던 말씀들

카톡 캡쳐가 (감사하게도) 여태 남아있길래 여기도 그 메시지 남겨본다



아이고 서현아

톡 보니 막막하고 답답한 서현이 맘이 느껴져 내가 더 속이 상하다

고립되는 맘이 생기고 그걸 다스리기 힘든 거 알어. 나도 삼십대 초반까지도 그래서 힘든 시기를 많이 겪었는데 내가 방황하느라 연락두절의 몇 달을 보내도 내 소중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예전 그대로 나를 받아주고 기다려줘서 힘이 나고 그랬던 것 같아

샘은 누구보다 서현일 믿어

그래도 긍정의 힘이 많은 아이란 걸


.


내가 이유 없이 침잠의 시간을 보냈을 때는 내 스스로가 너무 힘들고 나조차 설명할 수도 없는 심리상태기에 아무도 날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서 입을 닫아버렸는데

이유 없이 고단한 그 시기가 거짓말처럼 지나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정이 찾아오더라 그리고 어른이 되고 진짜 어른 말야 정신적 깊이

서현이도 누군가의 아픔을 더 깊이 공감하는 힘이 생길 거다 분명히

네 인생에 대한 통찰력도 생길 거고

애쓰지 마 설명하려고 이해시키려고

이런 감정이 오는 건 선택받은 사람한테만이니까

충분히 늪에 빠졌다가 서서히 올라와

뭍에서 기다릴게



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보고 싶어요

평생 갈 나의 상처와 흉터와 소중한 사랑 


©